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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영혼 : 정찬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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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관념과 현실, 욕망과 반성을 잇는
소설가 정찬의 장인 정신, 실천적 창작의 정수(精髓)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올해로 소설 이력 35주년을 맞은 작가 정찬의 소설집 2종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의 스물아홉번째 책으로 출간된 개정판 『완전한 영혼』과, 제25회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을 표제작으로 한 신작 소설집 『새의 시선』이다. 그간 정찬의 소설에 대하여 “인문학으로서의 문학에 충실한 소설, 소설이 인문학에서 차지해야 할 본연의 자리에 걸맞게 인간에 대한 탐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소설”(문학평론가 홍정선), “성과 속, 혹은 본질과 현상의 중간에서 그들 사이의 분리를 넘어선 교통에 대한 추구”(문학평론가 권영민), “소설의 개념에 대한 고정관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열린 의식의 소산”(문학평론가 장영우) 등 다양한 분석과 평가가 제출된 바 있다.

1992년 처음 출간된 정찬의 두번째 소설집 『완전한 영혼』은 그의 소설적 세계관과 입장을 유감없이 보여준 수작들의 모음집으로, 한국 소설계에서 권력에 대한 사유를 담은 대표 작품으로 꼽혀왔다. 26년 만에 새롭게 출간된 이번 개정판에서는 서사의 흐름과 양식적 조화를 고려하여 기존 판본에 실려 있던 중편 「황금빛 땅」을 덜어내었고, 현재의 표기 기준에 맞게 문장을 수정하였으며, 각 작품별 제재 및 표현을 다듬었다.

출판사 서평

속죄양이 되비추는 세계의 죄(罪)

당황한 표정이었던 두 군인의 얼굴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애원이었다. 사람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애원이었다. 남자의 손은 마침내 군인의 총에 닿았다. 그가 잡으려 한 것은 총이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기우뚱거렸다. 군인이 개머리판으로 그의 머리를 찍은 것이었다. 힘없이 쓰러지는 남자의 몸이 보였다.
“이 자식 미친놈 아냐.”
한 군인은 중얼거리듯 말했고, 다른 군인은 핼쑥한 표정으로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총과 진압봉을 든 그들의 손이 축 늘어졌다.
- 「완전한 영혼」, p. 38

이 책은 작가가 집요하게 탐구해온 인간 근본에 대한 성찰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이 사유를 현실과 밀접하게 잇는 실천적 행위로서 내놓은 결과물이다. 표제작 「완전한 영혼」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주요 모티프로 다루며, 당시 군인들의 무차별적 폭행으로 귀가 들리지 않게 된 장인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사회변혁운동가로서 끔찍한 고문을 견뎠던 화자나 지성수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식자공 출신의 ‘무사상적 인간형’인 장인하가 가장 이상적 모델로 제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인하는 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듯 사회에 의해 철저하게 훼손되고 무감각해진 사람들에게 비명과 애원으로써 단순하고도 명확하게 본말적인 인간애의 경종을 울리고, 그들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소설이란 인간들이 저지르는 훼손과 풍요에 대한 반성의 사유”라고 밝힌 바 있는 작가 정찬은, 자본주의와 전체주의로 물든 세계 아래 핍박받는 무고한 피해자이자 동시에 훼손된 인간을 반성과 자각으로써 되돌릴 수 있는 구원의 가능성인 장인하에 주목한 것이다.

권력과 사랑에 대한 놀라운 통찰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권력의 욕망이 제거된 정신이다. 권력이 없는 정신. 너는 이런 정신을 보았는가. 권력의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본능이 제거된 정신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인간의 정신에서 권력을 제거할 수 있다니…… 그 소름 끼치도록 깊고 완강한 욕망을 지워버릴 수 있다니…… 이것은 기적과 같다.” [……] “권력이란 살아 있는 생명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인간의 정신 속에 또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 모든 사람은 죽었고, 오직 자신만이 살아 있다는 감각. 이것이야말로 권력의 심장이며, 상상할 수 없는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알겠는가? 그대가 맛보았던 불꽃같은 황홀의 정체를. 그 황홀을 맛본 자는 평생 잊지 못한다. 그 불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은 물론 우주의 전 생명이라도 기꺼이 바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얼음의 집」, pp. 167~69

“나는 권력과 예술의 관계를 드러내는 상징을 찾아내었고, 그 상징을 소설을 통해 형상화하고 싶었다”(「신성한 집」, p. 89)는 서술에서 볼 수 있듯, 정찬은 인간을 추동하는 가장 큰 욕망 중 하나인 권력욕에 대한 통찰을 꾸준히 소설화해온 작가 중 하나다. 이 책에 수록된 중편 「얼음의 집」은 권력을 향한 본능적 욕망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장 생생하게 담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에 막노동꾼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화자가 1923년 간토대지진 이후 일어난 대규모 조선인 학살의 피바람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이후 간절한 권력욕을 키우게 되며 시작된다. 이 욕망은 당시 신과 동일시되던 천황을 살해하고 그 위에 서고자 하는 의지로 전환되어 화자는 박열과 후미코 등이 소속되어 있던 불령사에 가담하였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체포되어 극악의 고문을 당한다. 이후 고문 사상가이자 고문 기술자 하야시 세이카에게 경도되어 화자 또한 고문 기술자로 성장하게 되는 서사로 이어지는 이 소설은 결국 후반에 이르러 하야시가 자신의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얼음과도 같던 권력-욕망의 집이 허물어져버렸음을 고백하게 한다. 결국 이 소설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숙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의 힘에 주목함으로써, 권력의 본질과 바람직한 힘의 가능성을 사유하게 한다.

1990년대 관념소설의 주요 유형으로 자리매김한 정찬의 『완전한 영혼』은, 세계의 훼손과 황폐의 모습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이자 뿌리인 욕망, 그중에서도 특히 ‘권력’을 면밀하게 탐구하고 점검한 보고서와도 같다. 이를 소설가의 장인 정신으로 견고하게 재현해냄으로써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한 역사를 바로 보고, 세계의 폭력을 자각하게 하여 말 그대로 ‘완전한 영혼’을 향하게 하는 소설집이 26년 만에 새롭게 정비되어 독자 앞에 섰다.

추천사

홍정선(문학평론가)
그의 소설은 다른 어떤 이념적인 작가들의 소설 못지않게 권력에 대해 빈틈없이 날카로운, 그러면서 예언적이기조차 한 권력에 대한 비판을 담는다. 「완전한 영혼」만 하더라도 이를테면 1980년의 광주학살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다룬 다른 어떤 소설보다도 더 준엄한 알레고리적 논고이자 심판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정찬의 소설은 한국 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문학의 본질인 아니 삶의 본질인 권력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의 소산이다.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정찬은 영향력/힘/폭력으로서의 권력이 아닌 책임감으로서의 권력 개념을 도출한다. 권력이 영향력이 아니라 책임감이고 돌봄 노동이라면? 인간은, 사회는, 역사는 변화할 것이다. 혁명가, 지식인, 소설가는 그러한 변화를 시도하려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목차

완전한 영혼
패랭이꽃
신성한 집
길 속의 길
영산홍 추억
얼음의 집

초판 해설 권력과 인간에 대한 집요한 탐구ㆍ홍정선
신판 발문 신자유주의 시대 체현의 윤리ㆍ정희진
초판 작가의 말
신판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그는 시체실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그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소리가 물이 되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의 울음이 왜 상처 난 귓속으로 물처럼 흘러들어 오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들의 울음소리 자체가 상처의 소리였다. 소리의 상처와 귀의 상처가 다를 것이 없었다. 어쩌면 지극히 비과학적인 생각인지도 몰랐다. 상처 난 청각기관이 슬픈 울음이라고 그냥 내버려두겠는가. 의사의 말처럼 고장 난 전화선이 어떤 소리인들 가리겠는가. 휘어진 길은 휘어지면서 가게 되게 마련이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결국은 마찬가지였다. 비통한 울음들이 다시 휘어지고 뭉개지고 일그러진다 한들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비록 달라졌다 할지라도 그에게는 한없이 소중한 소리였다.
- 「완전한 영혼」, p. 42

둑 위에 벌겋게 녹이 슨 닻이 있고, 그 아래 개펄에는 작은 배가 기우뚱 놓여 있다. 개펄 오른쪽 너머로 모래톱과 초록색 지붕의 공장이 보인다. 모래톱에서 왼쪽으로 휘어진 개펄은 바닷물과 만나고, 안개로 흐려진 섬과 그 너머 수평선으로 이어진다. 둑에 걸터앉는다. 나는 소주를 마시고, 아이는 빵을 먹는다. 개펄에 수많은 새가 있다. 꽁지와 뒷등의 일부가 잿빛
일 뿐 온몸이 하얗다. 날개를 펼치면 이상하게 잿빛이 흰색을 압도한다. 새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울고 있다. 적막하고 음울한 울음이다.
- 「패랭이꽃」, p. 76

“내가 이데올로기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의 퇴조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야. 집단이 희구하는 진보적 이념은 어떤 경향의 소설가든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거든. 보이지 않는 끈이라고나 할까. 비록 내가 그 끈을 직접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끈의 존재는 소중해. 인간을 상승시키는 끈이기 때문이지. 인간은 아무리 상승해도 지나치지 않아. 현실의 삶은 언제나 잔인하니까.”
[……]
“소설이 점점 왜소해지는 걸 느껴. 신비감이 사라져간다고나 할까.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나에게 문학이 없으면 죽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외경도 빼놓을 수 없어. 문학이 스스로 발하고 있는 황홀한 빛에 대한 외경이라고 할까. 옛날에는 많은 사람이 황홀한 빛에 취해 있었어.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소설이 상품으로 전락된 지는 오래지만, 상품의 물신성이 점점 노골화되어가는 느낌이 드니……”
- 「신성한 집」 p. 92

? 누에고치에 서린 실올은 작은 바람기에도 날아가버리제.
나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어둠 속의 빛살은 누에고치에 서린 실올이었다. 무언가가 이마에 닿고 있었다. 관념이 아닌 것, 안락 속에 갇힌 정체된 정신이 아닌 것. 인공의 풍경이 아니라 한숨이 있고, 탄식이 있고, 삭풍이 있고, 무거운 삶을 지탱하는 뼈의 무게가 실려 있는 세계가 이마에 차갑게 닿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식탁에서 나는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 「길 속의 길」 p. 108

저자소개

정찬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53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였다.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중편소설 「말의 탑」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기억의 강』 『완전한 영혼』 『아늑한 길』 『베니스에서 죽다』 『희고 둥근 달』 『두 생애』 『정결한 집』 『새의 시선』,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 『황금 사다리』 『로뎀나무 아래서』 『그림자 영혼』 『빌라도의 예수』 『광야』 『유랑자』 『길, 저쪽』 『골짜기에 잠든 자』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올해의예술상, 요산김정한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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