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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다미오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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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 한센병 문학의 대표 주자 호조 다미오의 국내 첫 작품집이다. 열아홉의 나이에 발병하고 스물셋에 운명해 창작 활동 기간이 단 3년밖에 되지 않음에도 호조 다미오는 삶에 대한 의지와 고뇌를 절절히 담은 작품들로 일본문학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이번 책에는 그의 대표작 〈생명의 초야〉 외에도 데뷔작인 〈마키 노인〉과 유작인 〈소극〉을 비롯해 〈나병원 기록〉, 〈나병 가족〉, 〈눈보라의 첫울음〉, 〈망향가〉의 총 일곱 작품을 수록했다.

출판사 서평

20세기 초 제국주의로 치닫던 일본은 우생 사상을 받아들여 국민을 우열로 구분하여 약자를 사회에서 걸러 내는 정책을 폈다. 이 때문에 당시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은 병으로 인한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인 고난까지 극심히 겪어야 했다. 당시 한센병자는 법에 의해 격리 수용되어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음은 물론 강제 불임 시술과 임신 중절 수술을 당했으며 가족으로부터 절연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이런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한센병 환자들은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문학에 녹여 냈다. 호조 다미오가 바로 그 대표 작가다. 1926년부터 2000년까지 발표된 한센병 문학 작품들을 모아 2002년에 발간한 《한센병 문학 전집(ハンセン病文?全集)》(전 10권) 중에서도 호조 다미오의 작품은 단연 최고작으로 손꼽힌다.

호조를 문학 세계로 이끈 이는 다름 아닌 《설국(雪?)》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호조는 1934년 8월 가와바타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보낸다. 그때 호조는 가와바타(川端)의 성을 가와바타(河端)로 잘못 쓰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면서도 자신이 할 일은 문학밖에 없고 문학에서 한 줄기 빛을 찾고 있으니 제발 답장을 부탁한다고 애원하는 내용을 담아 보냈다. 만일 당시 문학지 《문학계》의 편집자이자 유명 인사였던 가와바타가 호조 다미오를 주목하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침 《설국》을 구상하고 있던 야스나리는 호조의 편지를 받고서 두 달여 후 답장을 보냈고, 이후 호조의 작품 활동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발표된 것이 호조의 대표작 〈생명의 초야〉다. 이 작품은 1936년 《문학계》 2월호에 게재되었으며 이후 제2회 문학계상을 수상했고 제3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호조 다미오’라는 필명도 이 작품과 함께 세상에 나왔다. 이 작품을 필두로 가와바타의 손을 거쳐 간행된 작품집이 호조 다미오의 생전인 1936년에 출판되었는데, 출판되자마자 1년 만에 2만 부가 팔리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번 책에는 호조의 대표작 〈생명의 초야〉 외에도 데뷔작인 〈마키 노인〉과 유작 〈소극〉을 비롯해 〈나병원 기록〉, 〈나병 가족〉, 〈눈보라의 첫울음〉, 〈망향가〉의 총 일곱 작품을 수록했다.
책의 첫 작품 〈나병원 기록(癩院記?)〉은 호조 다미오가 직접 체험한 한센병 요양소에 대한 내용을 담은 글로서 일종의 르포다. 한센병 요양소 입원 절차부터 병동 건물의 구성과 규모, 병실의 종류, 병원 내 경제생활, 한센병의 구체적 증상과 치료법 등이 소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요양소 내의 결혼 사정과 단종 수술의 실태도 엿볼 수 있다.
〈나병 가족(癩家族)〉은 아내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차례로 요양소에 들어오면서 빚어지는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과 슬픔이 잘 묘사된 작품이다. 한센병의 발병 사실을 숨긴 채 결혼한 아버지 사시치 때문에 장남 사키치와 장녀 후유코, 종국에는 막내 사타로까지도 한센병에 걸려 요양소 신세를 지게 된다. 한센병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한 가족을 통해 인간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눈보라의 첫울음(吹雪の産?)〉는 병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을 품는 숭고한 인간 정신이 깊은 감동을 주는 수작이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어느 밤, 한센병 수용소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아기와 목숨을 맞바꾸듯 한 사람이 스러진다.
〈마키 노인(間木老人)〉은 호조 다미오의 문단 데뷔작이다. 일본 모더니즘 문학의 거두였던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가 격찬했으며, 가와바타 역시 호조에게 보낸 편지에서 훌륭한 작품이라며 아낌없이 칭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센병 요양소에 입소한 지 얼마 안 되는 청년 우쓰와 마키 노인의 정서적 교류를 다룬 작품이다.
〈생명의 초야(いのちの初夜)〉는 오다 다카오라는 한 남자가 한센병 요양소에 입소하여 맞이한 첫날의 경험을 담은 호조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으로 호조는 제2회 문학계상을 수상했으며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당시 아쿠타가와상 선고위원이었던 가와바타는 “이러한 작품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이런 작품을 곧바로 선정하지 않는다면 편찬자로서 문학에 종사할 자격도 권위도 없다”라면서 문학으로서의 순수성을 높이 평가했으며, 문예평론가이자 작가인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역시 “이상하리만큼 단순한 이야기지만 생명 그 자체를 표현한 몇 안 되는 소설로, 작품에서 문학 그 자체의 모습을 보았다”라는 평을 《요미우리신문》에 기고하며 극찬했다.
〈망향가(望?歌)〉는 호조 다미오가 죽기 직전인 1937년에 발표됐다. 스물다섯 살에 발병하여 요양소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도리조와, 불행한 가족사를 겪고 고아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한센병에 걸려 요양소에 들어온 야마시타 후토시라는 사내아이의 교분을 담은 작품으로,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 독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작품이다.
〈소극(道化芝居)〉은 1938년 《중앙공론》 4월호에 실린 작품으로 1937년 12월에 사망한 호조 다미오의 유작이다. 전향한 사회주의자인 야마다가 한센병에 걸린 옛 제자이자 사회주의 사상의 동지인 쓰지 잇사쿠라는 청년과 재회하는 이야기로, 이 작품에는 복자(伏字)가 상당히 많다. 이 역시 당시 요양소와 내무성 경보국의 검열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추천사

나카무라 미쓰오(문예평론가)
“마르크스주의 문학은 단 한 사람의 인간도 살릴 수 없지만, 「생명의 초야」는 숙명의 고뇌와 대결하여 생명의 이론을 탄생시켰다.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는 문학을 시작한 유일한 작가.”

고바야시 히데오(문예평론가, 작가)
“이상하리만큼 단순한 이야기지만 생명 그 자체를 표현한 몇 안 되는 소설로, 작품에서 문학 그 자체의 모습을 보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작가)
“이러한 작품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이런 작품을 곧바로 선정하지 않는다면 편찬자로서 문학에 종사할 자격도 권위도 없다.”

목차

나병원 기록
나병 가족
눈보라의 첫울음
마키 노인
생명의 초야
망향가
소극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본문중에서

1.
만일 누군가 이 땅에서 지옥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밤 1시나 2시경에 중병실을 찾아가라. 귀신과 생명이 벌이는 격투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불꽃이 눈앞을 스칠지 모른다.
-〈나병원 기록〉 중에서

2.
바로 그때였다. 내게 분만실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진통이었다.
“이봐 사카모토, 큰일 났어, 큰일 났다고. 아이가 태어나!”
(...)
환자들은 침대 위에 앉아서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렸다. 느닷없이 찬물을 끼얹은 듯 병실 전체가 잠잠해졌다. 땅이 울리면서 눈이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보라는 아직 그치지 않았다. 야나이의 얼굴을 보자 그도 극도로 쇠약해진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시선이 딱 부딪치자 그의 해골 같은 얼굴에 희미한 기쁨이 번졌다.
“야나이, 곧 태어날 거야.”
나는 힘주어 말했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크게 뜨면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어날 거야. 그렇지?”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듯 힘없는 목소리였으나 그 안에 숨은 무한한 감동이 내 가슴으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 순간, 나는 죽어 가는 그의 생명이 태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새로운 생명을 향해 뿜어내는 불꽃을 또렷이 느꼈다.
“있잖아, 노무라. 생명은 말이야. 생명으로 이어지고 있어.”
-〈눈보라의 첫울음〉 중에서

3.
밧줄을 걸기에 적당한 대들보가 눈에 띄었다. 그는 토끼장 위로 기어 올라가 손을 뻗어 보았다. 가슴이 이상하게 벅차올라 그는 히죽히죽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띠를 풀어 대들보에 걸었다. 두세 번 시험 삼아 당겨 보았으나 열 명이 한 번에 목을 매도 끄떡없을 만큼 튼튼했다. 여기에 목을 매고 뛰어내리기만 하면, 으음, 죽기가 생각보다 쉽군, 그럼 사서 고생할 필요가 뭐 있나, 여기까지 올라와도 아무렇지 않으니 이제 언제라도 확실히 죽을 수 있겠다 싶어 마음을 놓았다. 그렇다면 그리 조급하게 서둘러 죽을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 우쓰는 다시 허리띠를 매고 아래로 내려왔다.
“우쓰 씨!”
마키 노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우쓰는 급히 밖으로 나왔다.
“진짜 매는 줄 알았어요.”
노인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쓰는 죄다 들켰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시험 삼아 한번 해 봤습니다.”
“하하하, 그래요? 시험 삼아서요? 어때요, 죽을 수 있겠습디까?”
“생각보다 쉽게 갈 수 있지 않나 싶더군요.”
“흐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생각에 잠기더니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생각입니까?”
라고 별안간 우쓰의 얼굴을 응시하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마키 노인〉 중에서

4.
“오다 씨, 저 사람들은 이미 인간이 아닙니다. (...) 인간이 아니에요, 오다 씨. 절대로 인간이 아닙니다.”
사에키는 자기 생각의 핵심에 다가선 듯 약간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인간이 아니죠. 생명입니다. 생명 그 자체, 목숨 그 자체인 겁니다. 오다 씨, 제 말 이해가 가세요? 저 사람들의 ‘인간’은 이미 죽어 없어져 버렸어요. 다만 생명만이 꿈틀꿈틀 살아 숨 쉬고 있어요. 이 얼마나 굳세고 꿋꿋합니까? 누구나 나병에 걸리는 순간, 그 사람의 ‘인간’은 사라집니다. 죽어 버려요. 사회적 인간으로서 죽는 것만이 아닙니다. 절대 그런 천박한 죽음이 아니에요. 전쟁에서 불구가 된 병사가 아니라 폐인이라고요. 하지만 오다 씨, 우리는 불사조입니다. 새로운 사상, 새로운 눈을 가지는 순간, 완전히 나병 환자의 삶을 손에 넣는 순간, 다시 한번 인간으로서 되살아난다고요. 부활, 맞아요. 부활이에요. 꿈틀꿈틀 살아 숨 쉬는 생명이 육신을 획득하는 겁니다. 새로운 삶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죠. 오다 씨, 당신은 지금 죽었어요. 죽었고말고요. 당신은 인간이 아닙니다. 당신의 고뇌와 절망,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 봐요. 한번 죽은 과거의 인간을 찾아 헤매기 때문은 아닐까요?”
-〈생명의 초야〉 중에서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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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연세대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동양어문학과에서 <요코미쓰 리이치(?光利一)의 유물론적 인식에 대한 고찰?≪상하이≫를 중심으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 오테마치(大手町)에 있는 주식회사 대한재보험 동경 사무소에서 통·번역 비서로 근무한 바 있으며, 영진전문대학과 영남이공대학, 한국IT교육원, 평생교육원 등에서 전임 강사로 일했다. 번역서로는 ≪구니키다 돗포 단편집≫, ≪요코미쓰 리이치 단편집≫,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 ≪씨앗, 그리고 열매≫, ≪하루 5분으로 만나는 일본문학 괴담편 : 인간의자≫, ≪귤(하루 5분으로 만나는 일본문학 대표작가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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