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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으로 상상해 보는 좀비의 뇌!

21세기에 본격적으로 발현한 좀비 콘텐츠의 폭발적인 인기는 “살아있는 살인마 시체”가 더 이상 카리브 제도 부두술사나 몇 안 되는 좀비물 마니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2002년에 나온 영화 〈28일 후(28 Days Later)〉는 좀비 장르를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하여 활력을 불어 넣었다. 그와 같은 해에 좀비 비디오 게임의 선구자격인 ‘바이오하자드(영어권 제목은 Resident Evil)’가 리마스터링되어 출시되면서 비평가들의 엄청난 찬사를 들었으며, 10년 뒤 역대 최고 게임 중 하나로 추앙받을 또 다른 좀비물 〈더 라스트 오브 어스(The Last of Us)〉의 탄생에 기여했다.
2003년 출간된 맥스 브룩스의 책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The Zombie Survival Guide』는 좀비 문학 장르의 전체적인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으며, 이듬해인 2004년에 나온 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Shaun of the Dead)〉는 좀비도 웃길 수 있음을 보여주어 좀비 장르의 다양성을 대폭 확장하는 작품이 등장하도록 길을 터 주었다. 그 결과, 2023년 현재에는 앞서 언급한 작품에 대해 무지한 사람일지라도 좀비가 무엇인지는 대략 알 정도로 좀비의 대중화가 진행되어 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이자 좀비 영화 마니아인 티모시 베르스티넨과 브래들리 보이텍은 그들의 저서 〈좀비〉에 각종 콘텐츠에 묘사되는 좀비의 다양한 행동장애를 관찰한 내용을 기록해 놓았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좀비의 모든 행동을 만들어내는 궁극적인 기관, 즉 “살아있는 살인마 시체”의 뇌를 들여다보면서 신경과학적으로 좀비를 이해해 보려 시도한다. 인간의 뇌에 대해 현재 인류가 이해하고 있는 내용 중에는 사람의 뇌가 외상이나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를 연구해서 알아낸 부분이 상당히 많다. 따라서 (비록 좀비 자체는 허구의 존재일지언정) 좀비의 이상 행동을 의식결핍 과소활동 장애(Consciousness Deficit Hypoactivity Disorder, CDHD)로 정의하여 분석하는 이 책은 분명 과학에 관한 책이다. 좀비라는 대중문화 내 친숙한 아이템을 이용하여 신경과학 분야를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동시에, 신경과학의 역사와 뇌 자체의 특성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이라는 학문은 개인의 비극을 바탕으로 세워진 부분이 적지 않다. 누군가의 부모, 배우자, 형제, 자녀, 또는 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사람들에게 뜻하지 않은 어떤 불행이 찾아와 이들의 중추신경계를 손상시켜 버렸다. 이런 손상과 그로 인해 생기는 행동의 변화 사이의 관계를 연구함으로써 신경과학자들은 뇌의 실제 작동 방식에 대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한 통찰을 얻었다. 이렇게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가 진화하면서 기초과학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치료법과 완치법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토대도 함께 닦이고 있다.

이 책은 주로 좀비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 사실 개인적 비극으로부터 배운 교훈에 바치는 송시다.
* 그리고 환자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질병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들여 자신의 환자들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한 과학자들에게 바치는 송시다.
* 또 아무런 잘못도 없이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고통받으면서도 하얀 가운을 입은 낯선 사람이 던지는 질문들을 참고 견뎌준 이들에게 바치는 송시다.

다니엘 드레즈너Daniel Drezner(『국제 정치와 좀비 이론Theories of International Politics and Zombies』의 저자)
“다른 학문 분야에서는 좀비의 위협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동안 신경과학자들은 너무 오래도록 손을 놓고있었다. 이제 좀비가 인간의 뇌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좀비의 뇌에 관심을 가져야 할때다.”

크리스토퍼 코흐(미국 시애틀 소재 앨런 뇌과학연구소 소장)
“저명한 뇌과학자인 저자는 독자를 시각과 흥미진진한 기억 탐구 여행으로 초대한다. 저자는 우리의 뇌가 어떤 장면을 구성하는 픽셀들을 그대로 기록하지 않으며, 뇌는 우리가 살면서 하는 경험들의 매우 적은 부분밖에는 다시 떠올리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우리가 하는 일, 보는 것, 기억하는 것의 대부분은 여과, 해석 그리고 추론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매트 목Matt Mogk(『당신이 좀비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Everything You Ever Wanted to Know about Zombies』)
“유익한 정보가 가득한 이 책은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필독서다. 이 책이 언젠가는 세상을 구할지도 모르니까! 나는 게걸스럽게 인간의 뇌를 탐하는 좀비처럼 이 책을 단번에 읽어 내려갔다!”

러셀 폴드랙Russel Poldrack(오스틴 텍사스대학교)
“대중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를 이용해서 신경과학의 개념들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신경학적, 신경과학적 증거라는 렌즈를 통해 좀비 행동의 다양한 특성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문

1. 그레이(좀비) 아나토미 17
2. 좀비 꿈속의 양도 좀비인가? 45
3. 느린 움직임의 신경 상관물 75
4. 배고픔, 분노, 어리석음 97
5. 좀비 대재앙 앞에서 울어봐야 소용없다! 129
6. 꼬인 혓바닥 147
7. 좀비의 주의철수 결핍증 183
8. 그나저나 이 좀비 얼굴은 누구지? 207
9. 내가 어떻게 내 자신이 아니지? 231
10. 이터널 좀비 선샤인 249
11. 좀비 대재앙에 과학으로 맞서자! 279‘

감사의 말
용어 설명
참고문헌 & 추천도서

p12 요즘 들어 좀비 바람이 뜨겁게 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많은 얘기가 나왔다... 좀비의 인기가 어디서나 급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 중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소통의 방식이 새로워지고 있고, 세계화와 사회적 변화가 점점 커지고, 전례 없던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번영과 불확실성이 뒤섞이는 등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는 것이 그 이유라는 것이다. 텔레비전, 비디오게임, 영화에서 좀비 장르의 장점은 그것을 백지 삼아 작가가 이해하기 힘든 사회적, 심리적 공포와 염려를 얼마든 그 위에 투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전자 조작? 그건 좀비물이 제격이지! 핵무기와 방사능? 그것도 좀비지! 계급투쟁? 그것도 좀비! 인종차별? 역시나 좀비! 실존적 위기와 자아 혹은 자유의지의 불확실성? 당연히 좀비! 생물학적 실험? 두말 할 것 없이 좀비! 우주 탐험? 좀비! 걷잡을 수 없는 소비 지상주의? 좀비! 무의미한 폭력? 좀비! 죽음? 좀비!!

p14 이 책에서는 좀비에 대해 이렇게 코믹하고 재미있는 태도로 접근해 보려고 한다. 이 책의 목표는 좀비를 이용해서 인지신경과학 분야를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그와 함께 독자
들에게 신경학의 역사와 뇌 자체의 특성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좀비를 사회적 병폐를 비유하는 도구로 이용할 생각은 없다. 대신 좀비의 다양한 행동장애를 세심히 들여다보고, 좀비의 모
든 행동을 만들어내는 이 신화 속의 기관, 즉 좀비의 뇌를 들여다보면서 좀비를 이해해 볼 것이다. 영화 〈28일 후〉의 도입 부분에서 한 외로운 대학원생이 좀비 원숭이에게 찢겨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 치료하고 싶으면 먼저 그것을 이해해야 해.”

p37 영화 〈쥬라기 공원〉(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1993년)에서 비 내리는 밤에 티라노사우루스가 그랜트Grant 박사와 아이들을 공격하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랜트 박사는 렉스Lex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친다. 움직이지 않으면 티라노사우루스가 렉스를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랜트 박사는 티라노사우루스가 파란색 찰흙 덩어리 피질이 없는 파충류이기 때문에 비 내리는 밤에 차를 배경으로 있는 두 사람의 복잡한 이미지 속에서 세부적인 내용을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빛의 변화나 움직임 같이 거친 특성들은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중간뇌에 있는 위둔덕superior colliculusㆍ이라는 뉴런 집합 때문이다. 중간뇌는 척수와 뇌간 위에 올라가 있는 노란색 찰흙 덩어리로 움직임에 강하게 반응한다. 움직임이 없으면 신경반응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지각하지도 못한다.

p179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좀비가 귀에서 소리를 처리하는 감도가 정상인보다 낫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뒤처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했던, 귀에 들리는 전체적인 잡음의 양을 통제하는 걸러내기 메커니즘이 좀비의 뇌에서 온전히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는 넘친다. 예를 들어 영화 〈월드 워 Z〉를 보면 특히나 큰 소리나 고음의 소리는 좀비를 미치게 만든다. 마치 소리 자체가 귀에 너무 고통스러워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장에 멈춰야 할 것처럼 말이다. 이는 좀비의 청력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지만 소음이 많은 환경에서는 자신의 주의를 쉽게 집중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다행스러운 점이다. 우리 인간은 필요한 곳으로 주의력을 집중하는 능력이 탁월해서 이 점에 있어서는 좀비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어쨌거나 소리는 분명 좀비의 뇌까지 전달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소리에 인간의 언어가 포함되었을 때 좀비가 그 소리를 이해한다는 증거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