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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세상을 보는 고유한 방식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너무 느리게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우리가 너무 성급해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평가한다. 물론 이러한 우리의 개인적인 체험들은 일반적인 동의를 얻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동을 타박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행동을 나의 세계관 안에 들여와서 그 행동이 나의 세계관에 일치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그 사람은 내 행동이 조급하다고 비난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행동을 먼저 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내가 그 경우를 어떻게 체험하는지는 그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지만, 그 사람은 그의 행동을 내가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 사람의 행동은 나에게 즐거운 체험이 된다. 콩깍지가 씌이는 것이다. 니클라스 루만은 바로 여기에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소통되는 원리가 있다고 본다.

1969년에 빌레펠트 대학 세미나 자료로서 집필되었지만, 이제 편집된 이 책의 내용은 석학들의 사상을 전혀 참조하지 않고서, 사랑이라는 주제를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통에 비추어 설명한다. 이 책은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사회학적인 사랑 이론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강요받고, 소통을 통해 확인하는 사회적인 사건으로서 분석한다. 우리는 소통의 여러 측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으면, 붙잡기 어려운 사랑의 소통도 감당해낼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그 길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사랑은 복잡하고 구체적이면서 광범위한 일상생활의 현상이지만, 그 현상을 적절하게 다루어낼 만한 이론은 아직 없었다. 니클라스 루만은 자신의 사회학적 체계이론을 이 현상에도 적용한다. 루만은 자신의 사회체계이론에 근거하여, 사랑도 인간 정신 활동의 결과로 보지 않는다. 루만에 의하면 사랑은 의식과 소통의 공동작용의 결과이다. 사랑은 열정적인 감정이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흔히 ‘뜨겁다고’ 생각하는 사랑을 ‘차갑게’ 분석한다.

루만은 개인들이 마음을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냉철한 판단에서 분석을 시작한다. 모든 소통이 그러하듯이, 사랑의 소통 역시 갈등의 씨앗이며,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소통은 마음을 합치는 순간이 아니다. 소통의 참여자들은 소통 사건들을 다른 관점에서 보며 각자 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인간의 이러한 운명적인 조건에서 그래도 행복하고자 한다면, 사랑 소통의 구조를 잘 알아서 연습을 통해 터득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일 것이다.

사랑에 관한 루만의 다른 문헌인 『열정으로서의 사랑』이 근대사회의 다른 부문들(정치, 경제, 과학, 종교 등)과 비교하는 가운데 사랑의 이념사를 추적했다면, 이 책은 근대적인 사랑 관계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책은 루만이 대학의 첫 강의 교재의 자료로 작성하였던 텍스트이다. 루만의 사후 2008년 유고로 발간되어 그해 루만의 10주기에 맞추어 출간된 책이다

역자 서문
열정으로서의 사랑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