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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어른이 되어 버린 당신에게도 성장을 위한 동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동화를 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왔다. 어른들이 자신도 한때 아이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모든 어른은 한때 아이였다. 어릴 적 내면 성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동화를 어찌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세상은 동화 속과 같이 잔혹하기 그지없다. 마녀와 거인처럼 절대적인 힘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어린 아이와 공주처럼 나약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도 여전히 세상이 무섭다. 그렇기에 우리는 동화의 결말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따뜻한 날이 찾아올 거라는 위로가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성장은 기관차 같은 폭주가 아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깊고 넓은 내면의 물음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동화는 그 물음에 환상적인 대답이 될 것이다.

거인이 사는 세상
〈잭과 콩나무〉 속의 잭이 콩줄기를 타고 올라간 거인의 집은 온갖 보석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무시무시하고 심술궂은 거인 또한 함께 살고 있었다. 아이에게 거인은 어른의 모습을 의미한다. 커다란 덩치에 아이가 할 수 없는 행동을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아이는 거인(어른)을 보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노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에도 세상은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어디쯤에 돈과 명예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앞에는 거인과 같이 압도적인 힘이 버티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잭과 콩나무〉 속의 잭처럼 스스로가 아무런 힘이 없다고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도 여전히 세상이 무섭다.
이야기는 정보와 다르다. 다 아는 이야기니까 두 번 다시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맞지 않다. 동화는 정보가 없다. 하지만 동화를 다시 읽으며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떨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동화 속에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동화는 어른들에게도 영혼의 성장 호르몬이 되어줄 것이다
어른들도 계속해서 자라난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사실을 감추고 싶어한다. 계속해서 자란다는 말은 ‘미숙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셈이어서일까. 대신 어른들은 자신들이 ‘늙어간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른들도 두렵다. 어른들도 실수한다. 어른들이 아이들과 다른 점은 두려움에 익숙해졌다는 것뿐이다. 어른은 경험이 많은 아이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이따금 마음속에 숨어 있던 아이들이 튀어나온다. 마음 한 켠에 꼭꼭 담아둔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불현 듯 길 잃은 아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은 동화를 통해 글자를 배우는 첫 단계가 이루어진다. 동화는 글자와 문장 구성은 물론이고 이야기 구조, 다양한 상징, 은유, 암시 등을 배울 수 있게 해준다. 또 아이의 내면적 성장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아이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동화는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다시 한번 더 동화를 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동화는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단순한 위로만을 던지지 않는다. 동화가 단순한 위로만 준다면 우리는 그림책을 펴볼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물론 분명 동화는 우리를 위로한다. 그러나 달콤한 위로만이 동화의 전부는 아니다. 동화는 여전히 세상을 무서워하는 아이인 나를 마주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성장은 기관차 같은 폭주가 아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깊고 넓은 내면의 물음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동화는 그 물음에 환상적인 대답일 것이다.

어른들에게도 성장을 위한 문학이 필요하다

첫 번째 이야기, 동화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이야기는 여행을 떠난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이야기
전래 동화의 뿌리, 민담
성장의 길잡이가 된 전래 동화
영혼도 성장 호르몬이 필요하다
두 번째 이야기, 성장의 불안과 희망
아이들은 두렵다
집 밖에 늑대가 있어요
〈빨간 모자〉와 민담 〈할머니 이야기〉
아이들의 분별력
〈빨간 모자〉의 거짓과 진실
우리 집에 거인이 살고 있어요
소가 콩으로 바뀐 이유
거인이 사는 세상
요행과 속임수
어떻게 부모가 될 것인가
세 번째 이야기, 새엄마와 마녀
가장 동화다운, 가장 미움받는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딸에게
페로와 그림 형제의 ‘재투성이’ 이야기
화덕과 아궁이의 여신
신데렐라, 미운 다섯 살
가족 로맨스
환상이 자라는 나무
〈콩쥐 팥쥐〉와 〈장화홍련전〉
꿈은 신데렐라, 현실은 장화홍련
성장의 고통
네 번째 이야기, 동화 속 부모 수업
〈백설공주〉, 어른들을 위한 동화
아름다움은 곧 젊음
왕비의 정체
거울과 왕자
잊혀져야 할 것
부모와 자식의 갈등
필리핀 전래 동화, 〈파인애플의 전설〉
죽어서 새가 된 아이
다섯 번째 이야기, 미래 사회와 그 적들
대한민국은 내전 상황
쫓겨난 아이들
언젠가 나서야 할 길
강이라는 은유
〈장화 신은 고양이〉, 신분 상승의 욕망
거인 같은 세상과 고양이 같은 아이들
3이라는 숫자
인생이라는 모험 앞에 선 아이들
여섯 번째 이야기, 내 짝꿍은 어디에
동화 속 결혼 이야기
동물 신랑 사람 만들기
침대에 올라온 개구리
어린이의 성
〈하얀이와 붉은이〉
견고한 상징 구조
〈푸른 수염〉과 실존 인물
‘어른의 사정’을 알기까지
일곱 번째 이야기, 함께 사는 세상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을 보는 여러 관점들
우리는 모르는 것은 함께 해결하라고 배웠어요
가난한 추방자들의 유쾌한 낙원 찾기
동물이라는 은유
모험가 대니얼 디포
현대인의 직계 조상, 로빈슨 크루소
독립적인 개인, 자유, 그리고 자본주의의 탄생
미래의 창조자, 쥘 베른
로빈소네이드 소설
소년들이 보여준 2년간의 생존기
아이에게 어떤 인간관을 심어줄 것인가
여덟 번째 이야기, 다문화 시대의 아이들
대량 이주의 시대
하이디와 마르코
《하이디의 수업 시대와 편력 시대》
하이디는 불우한 아이일까
《하이디는 배운 것을 쓸 줄 안다》
텅 빈 마을, 부서진 공동체
언제 읽고 써야 할까
이탈리아 이민의 시대, 《쿠오레》
한국의 하이디와 마르코를 위하여
아홉 번째 이야기, 태도에 숨겨진 비밀
엄마, 우리집 가난해?
자본주의의 시대를 열다
부르주아라는 신인류
왕자와 공주는 만들어진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과 《세라 이야기》
신데렐라와 부르주아 세라
진짜 공주의 조건
도금 시대와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의 첫 번째 역사소설
포악한 정치
몸에 새겨진 습관
우아함과 천박함
문화자본과 아비투스
천성과 교육
열 번째 이야기, 아이가 되고픈 어른들
네 성적에 잠이 오냐?
눈부신 황금빛 오후의 루이스 캐럴
‘이상하지 않은 나라’의 이상함
원더랜드와 네버랜드의 동상이몽
자라지 않는 아이
왜 피터 팬과 후크는 서로 미워할까
네버랜드를 떠나며

다 큰 아이들과 어린 어른들에게
찾아 읽기
참고문헌

현재 한국 사회의 아이들은 아파트에 갇혀 꽁꽁 싸 매인 채 보호만 받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매순간 자신이 무능하고 쓸모없다고 느끼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보호만 받으며 살다가 세상에 나아가면 잘 할 수 있을지도 겁이 난다. 빙빙 돌아가는 세상에 비해 자신이 너무 작고 나약하고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는 풀줄기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잭과 콩나무〉의 거인은 말
그대로의 거인이 아니다.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세상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p.56

어른과 아이가 같이 듣던 민담이 전래 동화로 자리 잡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전래 동화가 아동 문학이라는 체계를 갖추고 문학의 한 갈래로 대접받기까지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페로의 〈푸른 수염〉은 이러한 흐름에서 애매한 위치에 있다. 아내들을 죽이고 새로운 아내를 맞아들이는 잔인한 남자에 대한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어린이들에게 많이 읽혀지지 않는다. 〈푸른 수염〉은 어른들이 보기에도 잔인하고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지닌 섬뜩한 매력은 여전하다. 이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고 꾸준히 전승되는 이유는 페로 작품집에 실리기도 했지만 결혼이 품고 있는 끔찍한 비밀을 단순명쾌하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p.184

동화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는 말을 하면 여러 가지 질문을 받는다. 동화는 좀 비현실적이지 않냐, 차라리 위인전이 낫지 않겠느냐, 아이들이 책 읽기를 싫어한다 등등.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었다. 왜 동화에는 왕자와 공주만 나오느냐? 우리 주변에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잘 사는 이야기는 없느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추천하는 동화가 있다. 바로 그림 동화 가운데 〈브레멘 음악대〉라는 이야기이다.
p.200

부조리와 쓸데없는 절차가 지배한다는 면에서 원더랜드는 의외로 현실 세계를 닮아 있다. 원더랜드의 캐릭터들은 기괴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당시 영국의 실존 인물을 연상시키는 단서를 찾아냈다. 가령 하얀 기사와 붉은 기사의 결투는 생물학자 토마스 헉슬리와 성공회 주교 새뮤얼 윌버포스의 진화론 논쟁을 의미했다고 보는 식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론은 과학적 진리로 공인받았다. 그렇지만 당대인들에게 국가 최고 엘리트들이 마주 앉아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냐, 아니냐를 놓고 격돌하는 모습은 초현실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계도 그와 비슷하다. 게다가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받는 대접은 앨리스가 원더랜드에서 당하는 취급과 너무나 비슷하다.
p.314

현실에서 아이들은 변하지만, 사람은 보지 않고 걸친 옷가지만 바라보는 어른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 세상에서 살려니 때로 어른들도 답답하다. 끊임없이 남의 눈을 신경 쓰고 원치 않는 물건도 체면 때문에 사들여야 하는 생활에 숨 막힌다. 그래서 어른들도 때로 아이 적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른이란 재미없고 지루하고 지긋지긋하기만 하다. 가능하다면 평생 아이가 되어 자라고 싶지 않다. 피터 팬처럼.
p.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