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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리 시인의 시집 『술꾼』은 농투산이, 술꾼들에게 받치는 헌시다. 이들 시편들은 지금 이곳의 ‘농촌시’라고도 할 수 있다. 농촌의 구체적인 삶을 일구어낸 그의 시집에는 술과 관련된 노래가 상당히 실려있다. 술을 노래하고 있는 그의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서럽고 시린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사는 만큼 죽는 것이다.
태어난 날보다 죽을 날이 가깝다.
나이 처먹을수록 애들 생각 좀 하고 살자!
추악하게 늙지 말자!
시나 쓰다 죽자!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오동나무는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곡조를 품고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매화는 일생 추위에 떨면서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봄날 목천산방에서
박금리

박상률(시인)
박금리 시인의 소식이 늘 궁금했다. 마치 그걸 알기나 한 것처럼 그가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간 그는 시를 살았구나! 그가 전해준 소식은 시 속에 다 들어있다. 그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봄이면 씨앗 뿌리고 가을이면 거두어들이는 농사를 지었구나, 라고 짐작할 수 있다. 농사와 시. 하나는 흙 농사이고 하나는 글 농사이다. 흙 농사를 지으면서도 글 농사를 포기하지 못한 그. 무척 힘든 일이었을 텐데…. 흙 농사는 낭만이 아니다. 글 농사를 짓는 틈틈이 재미로 하는 여기가 결코 아니다. 글 농사도 마찬가지. 흙 농사를 짓는 틈틈이 재미로 하는 여기가 결코 아니다! 흙 농사와 글 농사 둘 다 포기하지 못하고 한 몸에 그러안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삶의 몸짓이다.

이은봉(시인 및 광주대 문창과 교수)
박금리의 시들은 지금 이곳의 ‘농촌시’라고 할 수 있다. 농촌의 구체적인 삶이 일구어낸 그의 시집에는 술과 관련된 노래가 상당히 실려있다. 시인은 장날 장터에 나가 “곤계란에 막걸리 한잔”(「장날」)을 마시기도 하고, “솔밭 자락에 터 잡아/묵은 탁주 말술을 먹”(「솔밭 애가」)기도 한다. “술병들 자빠져 있”는 “고적한 아침 막판 술자리”까지 “끝내 떠나지 않”(「주당 취가」)는 것이 그이다. 이는 아마도 나날의 일상이 만드는 “헛헛한 속을 채우”(「농투사니」)기 위해서인 듯하다. 늘 “헛헛한 속”으로 살아가는 그가 보기에게는 “술 속에 퍽이나 그리운 것”(「욕쟁이 할머니」)들이 들어있는 것인가. 이러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는 그의 시들은 읽을수록 서럽고 시린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저 스스로를 “망가져 가는 사람”(「소주나 한잔」)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누구라도 알싸하면서도 아린 멜랑콜리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의 말·05

제1부

겨울 반딧불이·13
농투사니·14
농사학생부군조부전상서·16
술꾼·18
욕쟁이 할머니·20
아버지·22
장날·24
주당 취가·25
치마끈을 풀다·26
솔밭 애가·27
농한기 한심·28
농사·30
시(詩)·31
어머니·32
곁에 두고도 그리운 아내에게·33
꼴불견·34

제2부

흰머리·37
늦밤·38
장맛비·40
가을 소리·42
비 그으니 들판 가자·44
가을 나락·46
도회인 씨 어머니 임종·47
모심고 한 달·48
유기농 아리랑·50
만추로 가는 길·52
노루집·54
해넘이 전에·55
귀농일기·56
병진 엄니·57
청설모, 농사꾼 되다·58
풀을 깎다·59
달빛 아래 산야·60

제3부

어느 날 치과에서·63
경운기 넘어가던 날·64
신농부가·66
콤바인 대신 소주·68
진천 장 갔다가·70
그만둘까·72
박 시인, 결국 농사꾼 되다·74
개새끼들·76
소주나 한잔·79
촛불 속에서·80
쇠고기 유감·82
고추 백관을 따고·83
아내를 위한 변명·84
별밤·85
판화가 류연복·86

제4부

신법보단경·89
지장보살마하살·90
영산회상·91
산고양이에 부쳐·92
두렁에서 산사를 보다·93
중광 만운 단상·94
늦봄, 수덕사·95
아내·96
묘지송·97
앞날·98
들녘에서 해하를 생각하며·99
만취·100
돌 굴러간다·102

시인의 산문·103

술꾼

너 감히 술꾼이거든
곳간의 재물과 젊은 날들
술로써 비워짐을 개의치 말라
먼 날 지나간 젊음이란
한잔 외상술 저당거리로도
잡혀주지 않는 것
곳간의 재물 또한
늙어지면 한잔 술로 바꾸지 못하네
술꾼이란 엽전 한 닢 술 한 방울
짧은 시간조차 남기지 않는 것
한낮의 햇살은 더운 술에 절여
빈속에 재워 놓고
한밤의 달빛은 자작 술 길게 부어
샛별 보기를 함께 하라
술로 살고 술과 가면 술이 술을 먹고
술과 사람에 구별 없나니
취한 몸 저잣거리에 누워
긴 꿈에 젖어들면
어느덧 먼 날이 멀지 않네
―「술꾼」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