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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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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어가던 그때!

파란만장한 시간을 온몸으로 거쳐간 사람들의 이야기『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현재 독일 문단을 이끌고 있는 '동독 3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토마스 브루시히의 소설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에서 독일 통일이 완결된 1990년 사이를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변해가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독일 통일의 의미를 다시 짚어본다.

격동의 시간을 온몸으로 거쳐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각각, 때로는 한곳으로 모이며 펼쳐진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물리치료사 레나를 중심으로 그와 대비되는 서독의 기자 레오를 비롯해, 무대 격으로 등장하는 동베를린의 팔라스트 호텔 총지배인 알프레트 분추바이트 등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곳에서 10여 명의 인물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만나고 헤어진다.

이 소설은 갑자기 닥친 통일을 겪어나가면서 크고 작은 역사의 파도에 휘말리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인물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풍자, 아이러니 넘치는 상황 등에서 비롯된 위트가 돋보인다. 작가는 통일로 이뤄진 화폐 통합 과정에서 이익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을 번 사람은 누구일까, 동독의 고위 정치가들은 통일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예리한 관찰력과 상황을 꿰뚫는 통찰력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출판사 서평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던 그때,
그 파란만장한 시간을 온몸으로 거쳐간 사람들의 이야기

“삶은 반짝거리는 우연에 의해 지배당하는 거라고. 어쩔 수 없어.”


명분은 통일이었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면에서 서독으로의 통합 흡수를 의미했던 독일 통일. 그 당시 휘몰아쳤던 처음의 흥분과 감격이 가시고 현재는 동·서독 양쪽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독일 정부는 1990년 통일 이후 ‘통일 연대세’를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지난 19년간 무려 1조2천억 유로를 구동독 지역에 투입했지만, 여전히 구동독 지역은 ‘쇠락의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2009년 9월 시사주간지 『슈테른Stern』의 의뢰로 포르자연구소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15%가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토마스 브루시히의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는 이런 배경하에 쓰인 작품이다.

1965년에 동베를린 지역에서 태어난 토마스 브루시히는, 구(舊)동독 출신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에 대한 절대적 신념이나 부채감이 없는 새로운 시선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파헤친 작품을 발표하며 현재 독일 문단을 이끌고 있는 이른바 ‘동독 3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1991년 『물의 색깔』로 데뷔했으며, 1995년 발표한 『우리 같은 영웅들』은 “고대하던 전환기(통일을 전후한 시기) 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동·서베를린의 경계선으로 인해 하나의 거리가 동쪽은 동베를린, 서쪽은 서베를린에 속하게 된 존넨 거리의 젊은이들을 코믹하게 그린 『존넨알레』(1999)는 단기간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연극으로, 방송극으로, 영화로 각기 달리 성공을 거두며 큰 반향을 얻었다. 그 이후 『남자가 되기까지의 삶』(2001),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2004), 『베를린 광란파티』(2007), 『축구심판 페르티히』(2007) 등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확고한 지명도를 확보하고 있다.

토마스 브루시히의 작품 세계는 같은 ‘3세대’로 분류되는 잉고 슐체나 볼프강 힐비히 등과는 다른 새로운 경향을 띤다. 슐체와 힐비히의 작품 속에는 동독 시절의 기억이 과거의 상처로 존재하는 반면, 아픈 역사와 개인의 상처에 대해 이미 나름의 결론을 내린 브루시히에게 그 시절은 더 이상 어두운 과거로 남아 있지 않다.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 영화학교에서 극작을 전공하고 시나리오를 써왔던 작가답게 브루시히의 문장은 생생하고 직접적이며, 무엇보다 위트가 있다. 영화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박물관 경비원, 접시닦이, 여행 가이드, 호텔 짐꾼, 공장 노동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한 그의 경험도 작품 속에 녹아들어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브루시히는 흔히 ‘전환기 위트 소설의 원조’라고 불린다.

이 작품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도 브루시히의 작품답게 등장인물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풍자, 아이러니 넘치는 상황 전개 등에서 비롯된 ‘위트’가 흘러넘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에서 독일 통일이 완전히 완결된 1990년 사이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브루시히는 10여 명의 주요 인물을 등장시켜 역사의 큰 소용돌이 속에서 변해가는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을 묘사함으로써 이젠 퇴색해버린 독일 통일의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짚고 있다. ‘통일로 이뤄진 화폐 통합 과정에서 그 와중에 이익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을 번 사람, 잃은 사람은 누구일까’ ‘동독의 고위 정치가들은 통일 후 어떻게 되었을까’ 등 그 질문도 매우 구체적이다.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상황을 꿰뚫는 통찰력이 작품 곳곳에서 반짝인다.

“나는 나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쓰고 싶다. 내게 재미없는 책이 어떻게 독자들에게 재미있을 수 있겠는가?” 평소 밝혀온 지론대로 브루시히가 자신의 재능과 입담을 남김 없이 펼쳐 보인 이 작품은 7백 페이지가 넘는 긴 장편소설이지만 매우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등장인물이 많고 그들 각자의 이야기도 다양하지만, 잘 짜인 모자이크처럼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면서 전체적인 파노라마 영상을 만들어 펼쳐 보이는 솜씨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작품 내용]

이 소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과 독일의 통일이 완전히 이루어진 1990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 격동의 시간을 온몸으로 거쳐간 여러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로 진행되면서, 때로는 한곳으로 모여드는 퍼즐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물리치료사 레나, 끝까지 소박한 라이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삶에서 그대로 뜯어낸 듯한 사진을 찍길 원하는 레나의 큰오빠, 열두 살에 독일로 이민 온 폴란드 출신 청년 발데마르 부데, 고위층과 선이 닿아 있으며 비밀리에 동독 비밀경찰의 활동에 협조했던 여변호사 기젤라 블랑크, 가젤라 블링크 변호사 사무실 보조 직원 다니엘 데티엔, 동독의 지식인을 대표하는 키 작은 턱수염 시인, 통일 후 정치계에 발을 디뎠으나 과거 독방에 수감됐던 시절 방사능에 노출되어 불치병에 걸린 저항 예술가 위르겐 바르테, 유명 기업의 회장과 성이 같다는 이유로 회장의 아들로 본의 아닌 오인을 받고 이 때문에 감수해야 했던 불이익으로 인해 사회에 복수심을 품고 전문 사기꾼으로 변신해 회장의 아들을 사칭하여 호텔에 무전 투숙하는 19세의 알비노 청년 베르너 슈니델, 윤기 없는 외모와 그에 못지않게 뭉툭한 뇌를 가진 카틀린 브로인리히, 통일을 즈음해 맡겨진 골치 아픈 사건을 놓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의 출세에 방해되지 않는 것일까 고민하는 검사 마티아스 랑게, 아무 생각 없이 혼외정사를 즐기는 그의 아내 베레나 랑게, 스스로 고안해낸 교묘한 방법을 바탕으로 동독의 서방 외화벌이를 담당하는 고위 관리 발렌틴 아이히, 독일의 정론지로 손꼽히는 시사주간지의 간판 기자 서독인 레오 라트케, 여자로 성(性)을 바꾸는 수술을 채 끝내기도 전에 담당 의사가 서독으로 가버린 탓에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야만 하는 하이디, 그리고 이들 인물이 얽히고설키며 만나고 헤어지는 작품의 중앙무대 격으로 등장하는 동베를린의 팔라스트 호텔 총지배인 알프레트 분추바이트, 그리고 그 외에 이런저런 ‘작은 주인공들’이 각각 퍼즐 조각 하나씩을 차지한다.

내용의 중심을 이루는 인물은 레나이다. 아름답고 순수한 그녀의 내부는 역동성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레나는 시위를 가로막고 선 전경들의 무리를 앞에 두고 용감하게 울분을 토해낼 수 있는 여자이다. 한 사람의 작은 변화가 주위에 파장을 일으킨다면 언젠가는 세상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상주의자 레나였지만 통일의 기쁨이 지나고 일상이 찾아온 어느 날, 그녀는 ‘뭔가가 익숙해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결국에는 그녀도 서독적인 세상살이 앞에서 눈이 멀고 만다,
레나는 서독인 기자 레오 라트케에게 계산하는 법을 배워 동독 화폐가 서독 화폐로 흡수될 때의 기회를 이용해 돈을 번다. 그녀가 노랫말을 붙이고 직접 노래를 부른 저항 노래는 격변기에 때맞춰 나와 히트를 쳤으나 사실은 옛 동료인 마른 야콥이 작곡했던 것으로, 그는 레나가 이 곡의 히트로 벌어들인 수입을 분배하지 않았다고 하여 레나를 고소한다. 레나는 난생처음으로 ‘소송물의 가격’이란 개념을 배운다. 한때 레나에게 자신이 쓰던 방도 내어주었던 마른 야콥이었으나 돈이 시작되는 곳에서 우정은 끝이 난다. 레나는 거리의 춤꾼들의 현란한 춤 솜씨에 감탄하지만 그들이 돌리는 모자 속에 돈을 집어넣지 않은 자신에 대해서 끝내 입을 다문다. 예전에는 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관념이 없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지갑에, 통장에 정확히 얼마가 들어 있는지 항상 알고 있다.

동쪽의 레나에 대비하여 등장하는 인물이 서쪽의 레오 라트케이다. 어리고 순수하고 이상주의적인 레나와 달리 그는 이미 성공한 언론인으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둘은 서로를 보자마자 강한 이끌림을 느낀다. 레나에게는 무엇보다도 그가 경험한 미지의 세계가 강력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연인이 되지는 못한다. 레오는 서독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는 기자였지만, 장벽이 무너지는 거대한 사건의 와중에 오히려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말하자면 바깥세상에서는 장벽이 무너졌는데 자신의 내부에서는 새로운 장벽이 세워진 듯한 아이디어의 고갈과 무기력을 경험한다. 때때로 자만심의 수위로까지 올라오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넘쳐나던 그의 자아는 이 글쓰기의 위기를 통하여 거의 정상적인 크기로 줄어든다. 그동안 한 번도 멈춤 없이 앞으로 달려만 오던 그가 나름대로 자신만의 전환기를 맞게 된 것이다. 자신의 잡지사에서 시각장애인 자비네 부세를 취재한 기사의 출판을 거절당한 후 다시 한 번 미국에서 출판을 시도하지만 이마저 실패하게 되자 그는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아무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음을 자축한다.

이런 식으로 통일은 등장인물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해 그들을 뒤바꾸어놓는다.

자살률을 떨어뜨린다는 사회주의적 복지 향상 차원에서 실시된 성전환 수술의 희생양이 된 하이디에게도 통일은 기회가 아니라 위기였다. 나라가 통일되었으나 당당한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지 못한 채 여전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존재로 남게 된 것이다. 그(녀)는 결국 미완성의 육체를 숨겨가며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고 두려워하던 ‘성(性)으로만 취급되는’ 거리의 여자로 살아가게 된다.

시각장애인인 자비네 부세는 자신의 존재 방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개안 수술을 받게 된다. 자비네 부세는 장애를 장애라고 느끼지 않으며 나름대로 잘 살아온 사람이었다. 남들이 볼 때는 장애인일지 모르지만 본인은 그 장애에 완벽하게 적응하여 심지어 좋아하는 화가도 있고 여러 회화 작품을 논평하기도 했었다. 개안 수술 후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이 나타나면서 평화롭던 그녀의 인생은 엉망진창이 된다. 새롭게 펼쳐진 세상에서 여기저기 터지는 색채와 선의 불꽃놀이는 그녀의 눈에 너무 화려하고 복잡하다. 눈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느니 아예 인식하기를 거부한다. 새로운 정보를 인지하지 않는 시각은 익숙하던 예전으로 도피하려고만 하고, 그동안 불완전한 시각을 보완하여 그녀를 세상에서 살아남게끔 하던 다른 기관들의 기능은 뒤죽박죽이 되어 하이디와 마찬가지로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된다.

한편, 체제가 무너지자 곤란을 넘어 신변의 위험까지 느끼는 이도 있었다. 동독의 외화 수입을 담당하던 발렌틴 아이히로, 경제부 장관이나 당 서기관 등 겉으로 드러나는 최고위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았지만 국가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장막 속에 가려진 경제 실세였다. 국가적 중죄인으로 단죄받아야 할 그이지만, 통일 후에도 결국 그가 쌓아온 인맥과 지식 등을 이용해 여유로운 남부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이외에도 갑자기 닥쳐온 통일을 겪어나가면서 크고 작은 부침에 떠밀려가는 개인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해외 서평]

브루시히는 풍자가이고, 사회비평가이며, 마술적 리얼리스트이다. _『슈피겔Der Spiegel』

브루시히는 다음과 같은 지론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쓰고 싶다. 내게 재미없는 책이 어떻게 독자들에게 재미있을 수 있겠는가?” 이 작품을 통해 그가 그 신조를 지켰음을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_『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큰 스케일의 소설. 전환기를 조명하는 거대한 파노라마. 비할 데 없이 훌륭하다. _『함부르거 아벤트블라트Hamburger Abendblatt』

감동적이고 재미있고 엉뚱하다. 이 시대의 소설 장르를 더 확장하는 카니발 같은 이야기다. _『벨트Welt』

목차

흐릿한 사진
제1장 뜨뜻미지근한 건 이제 그만
제2장 영원으로 가는 첫 순간
제3장 금요일 오후 1시 이후
제4장 전복
제5장 미친 나라
제6장 돈, 없을 때와 있을 때
제7장 세상에 떠 있는 구름 한 점

옮긴이 해설: 조그만 불빛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격변기의 파노라마
작가 연보
기획의 말

본문중에서

뉴스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틀었으나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간식을 다 먹고 나서 거실로 간 그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장벽이 열렸어요.” 바바라가 라디오를 틀었다. 국경에서 사람들이 환호하고 쿠담에 트라비 자동차가 밀려들고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합창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심각하게 라디오를 듣는 모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놀라움이 사람들의 눈에서 빛을 뿜어내며 넘쳐나고 있었다. 이상향의 출현에 절대적으로 압도된 인간의 모습을 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환호가 아닌 감동에 휩싸인 엄숙함으로 그들은 반응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라디오 드라마나 듣자고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이 아니지 않냐”고 랄프가 좌중에 물음을 던졌다. 그는 분명 라디오 드라마라는 말을 썼다. 예전에도 허구의 이야기를 실제의 사건처럼 꾸며서 소신 없는 청취자들을 속여 넘긴 사례가 있지 않았냐고 했다. 오손 웰스가 만든 「우주전쟁」의 라디오 극이 불러온 혼란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었다. 모임의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듣던 것이 라디오 극이긴 하지만 잠시나마 베를린 장벽이 정말로 무너졌다고 믿었다는 것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랄프가 ‘개발 학년의 실천을 촉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을 때 레나의 큰오빠는 속아 넘어간 자들의 정신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
그가 나가고 나서 5분 있다가 바바라가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부엌으로 가서 몰래 라디오를 틀었다. 2분 후 다시 담배 연기로 뒤덮인 거실로 돌아온 그녀의 얼굴은 뭔가 달라져 있었다. 민권운동적으로 뭉친 무리들은 교육개혁에 관한 토론을 중단하고 물었다. “뭡니까?” “아무것도 아녜요.” 바바라가 대답했다. “그런데 똑같은 라디오 드라마가 전 방송 채널에서 방송되고 있어요.” 그녀는 피식 웃었다. (115~16쪽)

그가 알게 된 사실은 그들 일곱 명이 남자에서 여자가 되는 여정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직 하나의 소망, 즉 그들에게는 비자연적이기 짝이 없는 자연이 준 성(性)을 바꾸는 것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다. 놀림과 단절, 심리 상담, 정신 치료, 각종 실험, 자해, 자살기도, 그리고 쉴 새 없는 불행감으로 그들의 삶은 얼룩져왔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의 소망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아 당국의 허락하에 수개월 예정의 성전환 치료가 시작되었다. 성전환을 실시할 수 있는 병원은 단 한 군데, 하나의 의료 팀뿐이었다. 그러나 그 의료 팀은 지난 늦여름 이후 서독으로 이주한 상태였다. 뤼디거 위르겐즈 박사 앞에 선, 한때 남자였으나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그 일곱 명은 미완성이었다. 그들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었다.
“우리는 남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버려졌을 뿐이라고요!” 한 명이 소리쳤다. 몸집은 작았으나 가느다란 입술과 작은 눈 때문에 남자 같은 느낌을 주는 그의 얼굴은 여자처럼 꾸며져 있었다. 가슴과 엉덩이, 목소리는 남자였고 부드럽고 나긋한 몸동작은 여자였다. “서독 병원에서는 서독 의료보험이 없는 우리를 받지 못하겠대요.”
[……]
“모두가 자유를 얻었는데 우리만 아닙니다.” 까칠한 수염의 여자가 남자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은 뤼디거 위르겐즈 박사가 지난 몇 주간 들었던 말 중 가장 슬픈 말이었다. (208~09쪽)

루츠 노이슈타인 경감은 나무 의자에 앉아서 사태를 분석해보고 있었다. 이런 사건은 정말 싫었다. 이런 시국에 서독 국민을 취조한다는 것은 큰 사고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서독 국민이라는 호칭도 쓸 수 없었다. 독일인 아니면 독일 국민이라고 불러야 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취조해야 하나? 그들은 인권이라는 게 있다는데 곧 통일이 이루어지면?통일이 되긴 될 것 같아 보였다?루츠 노이슈타인은 독일 국민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이유로 곤경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 구타하거나 고함을 쳐대거나 잠을 안 재운다거나 협박을 한다거나 물 한 방울 주지 않는다거나 눈을 부시게 한다거나 등 뒤에서 왔다 갔다 맴돈다거나 하는 일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조사는 해야 했다. 증거는 막대하게 확보되어 있었다.
어제 취조에서 그는 이 슈니델이라는 작자에게 보석Jewel 담배 한 대를 권했다. 슈니델은 담배를 받아 들고 한 모금 빨더니 진저리를 치며 바로 꺼버렸다. 또다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안경점 계산대에도 사탕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는 서독에서는 취조실에서도 무료 담배 한 대는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인권 때문일 것이다.
루츠 노이슈타인은 담배를 구하러 지하철의 나무 의자에 몸을 싣고 동물원 역으로 갔다. 그는 역에서 내려 자동판매기에서 말보로 한 갑을 꺼낸 다음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538~39쪽)

저자소개

토마스 브루시히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65

1965년 독일 동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인생 경험을 쌓았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20대에 생생하게 경험한 그는 동독인이기 때문에 더욱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독일 통일의 문제를 다룬 작품을 쓰고 있다. 독일의 콘라드 볼프 영화학교를 졸업한 그는 자신의 책을 희곡이나 시나리오로 각색해 무대와 스크린에 올리기도 했다. 소설 '우리 같은 영웅들'과 '존넨알레'는 많은 독일 독자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브루시히는 구동독 출신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 독일 문단 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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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항심 [역]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역자 문항심은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홈볼트 대학에서 마기스터 학위를 받았다. 베를린 자유대학 도서관과 홈볼트 대학 도서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독일에 거주하면서 독일문학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등 소설 여럿과 《삶의 격》, 《자기 결정》, 《피터 비에리의 교양 수업》, 《공간의 심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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