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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한 자유인이자 정열의 연인인 요코의 파란만장한 삶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반자연주의 입장에 서서 인도주의, 이상주의 문학을 주창했던 백화파의 대표 작가인 아리시마 다케오의 대표작. 그 당시 신문에 기사화할 정도로 화젯거리였던 이혼녀의 유부남과의 연애 사건을 바탕으로, 관습에 저항하며 본능에 충실했던 한 여자의 화염 같은 사랑과 몰락을 치밀한 묘사로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남달리 자유를 향한 열망과 주체의식이 강한 요코. 그녀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고 자신의 욕구에 따라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는 삶을 선택한 탓에 끊임없이 사회적 통념에 부딪치며 성장한다. 소설은 요코가 겪게 되는 대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단절과 그로 인해 깊어지는 한 남자에 대한 집착적 사랑, 그리고 그것들의 불화로 발화된 히스테리가 결국 광기가 되어 극한의 불안과 좌절로 치달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1901년 9월부터 1902년 7월까지 25~26세의 요코의 삶을 담은 이 작품은 치밀한 묘사로 여성의 근대적 자아를 억압하는 사회상황과 그에 갈등하는 요코의 심리를 속도감 있게 읽어 내려간다. 한창 서구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일본 근대사회의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가운데 한 여성의 삶과 내면세계를 예리하게 꿰뚫어 화제가 된 작품이다.

소작인들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돌려줄 만큼 진보적인 사상가이자 “사랑은 아낌없이 뺏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가로, 일본에서는 나쓰메 소세키 못지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아리시마 다케오. 그의 대표작 《어떤 여자》(1919년)는 신문에 기사화할 정도로 화젯거리였던 한 이혼녀의 유부남과의 연애 사건(1902년)을 바탕으로 씌어진 장편소설로, 주인공 요코(葉子)를 비롯해 작중인물들의 실제 모델 대부분이 당대의 명사들이었던 탓에 더욱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떤 여자》가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한창 서구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일본 근대사회의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가운데 한 여성의 삶과 내면세계를 예리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회 전반적으로는 서구화 근대화 정책이 진행되고 있으면서도 여성은 여전히 자아가 통제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현실, 그리고 거기에 저항하며 자신의 본능대로 살고자 하는 여성의 이야기는 ‘진정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의 현재’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요컨대, 박경리 선생이 《토지》(4부)에서 표현했듯 “인간의 본질과의 싸움을 늦추지 않은 작가 아리시마 다케오”는 《어떤 여자》의 ‘요코’를 통해 자기 필연의 충동으로 자신의 생활을 이끌어나가는 본능적 생활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뛰어난 일본 근대문학을 찾아 성실하게 번역한 옮긴이 유은경 교수의 정성이 담긴 《어떤 여자》는, 나쓰메 소세키와 견줄 만한 일본 근대문학의 선두주자 아리시마 다케오의 대표작을 한국에 소개하고, 또 당시 일본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다는 데에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 개 요
《어떤 여자》는 1901년 9월부터 1902년 7월까지 요코(25~26세)의 삶을 담고 있다. 작가는 오싹할 정도의 집요하면서도 치밀한 묘사로 여성의 근대적 자아를 억압하는 사회상황과 그에 갈등하는 요코의 심리를 속도감 있게 읽어 내려간다. 남달리 자유를 향한 열망과 주체의식이 강한 요코는 이미 근대의식이 형성된 일종의 신여성이다. 그녀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고 자신의 욕구에 따라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는 삶을 선택한 탓에 끊임없이 사회적 통념과 부딪치며 성장한다. 결정적인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도 요코는 집단과의 화해로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더욱 솔직하게 자신의 본능을 따라가는 방식을 택한다. 이 소설은 그러한 요코가 겪게 되는 대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단절과 그로 인해 깊어지는 한 남자에 대한 집착적 사랑, 그리고 그것들의 불화로 발화된 히스테리가 결국 광기가 되어 극한의 불안과 좌절로 치달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 줄거리
19세에 열렬한 사랑에 빠져 부모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결혼했지만, 허상이 벗겨진 남편이 나약한 지식인에 불과했음을 발견하고 일방적으로 결혼생활을 청산해버린 요코. 남편 몰래 아이까지 낳았으나 유모에게 맡기고 새로운 인생을 찾기로 한 뒤 6년이 지나 25세가 된 요코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유산을 친척들에게 빼앗긴 채 홀로 두 여동생을 돌봐야 하는 상황. 요코의 과거와 자유분방한 기질을 수치스러워하는 친척들은 그녀가 하루 빨리 미국에 사는 기무라와 결혼해 ‘정상적인 주부’로 살기를 강요한다. 어디서도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혼돈 속에서 방황하던 요코는 새로운 사회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미국행 배를 타지만, 배의 사무장인 유부남 구라치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 함께 돌아온다. 이 일이 기사화하여 신문에 나자 일가친척들은 모두 그녀에게 등을 돌리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요코는 동생들과 함께 구라치와 동거생활에 들어간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밑바닥을 움직일 수 있는 강렬한 ‘무엇’을 찾아왔던 요코에게 구라치는 곧 그 대상이 된 터. 구라치가 이혼하고 요코만의 남자가 된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요코는 점차 집착과 의심의 늪에 빠져드는데……

■ 요코는 어떤 여자?
도도한 자유인
요코는 미지의 경험을 동경하는 열정과 어떤 경우든 그 끝까지 가보고 싶어하는 모험심,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감각적인 심미안을 가지고 있지만, 여성의 삶을 통제하는 사회 시스템은(심지어 혈연이나 여자들까지도) 요코의 개성과 재능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자기 본연의 것이 차단당함으로써 오는 불만과 불안을 경험하면서도 요코는 가족, 연인, 종교 등 어떤 것에도 자신을 의탁하지 않은 채 스스로 서고자 한다.

그 나라에는 환락도 애상도 실생활 속에 멋들어지게 짜여 있는 생활이 있음에 틀림없다. 여자의 매력이라는 것이 습속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그 자체가 빛을 발하는 생활이 그 나라에는 있음에 틀림없다. 재능과 역량만 있으면 여자라도 남자의 손을 빌리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생활이 그 나라에는 있음에 틀림없다. 여자도 가슴을 펴고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생활이 그 나라에는 있음에 틀림없다. (p.110)

나는 아무래도 태어나서는 안 되는 시대에, 태어나서는 안 되는 장소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야 할 시대와 장소는 어딘가에 따로 있다. 거기서는 여왕의 자리에 앉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힘을 가질 수가 있을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 그곳을 찾아내고 싶다. (p.162)

정열의 연인
열세 살 때 신(神)을 향한 연정으로 오비를 만들었다가 사감으로부터 남자에게 줄 선물이라는 오해를 받아 감금된 적이 있는 요코. 열다섯 살 때 남자에 눈을 뜬 요코는 적당히 즐길 만큼 즐기고 등을 돌리는 식의 연애에서 쾌감을 얻는다. 순결무구한 첫 연정의 결과로 무력감과 소통 불능을 경험한 요코에게는 당연한 행로일 터.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코에게선 한눈에 남자의 심리를 훤히 꿰뚫어보고 원하는 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재능이 본능처럼 발현된다.

육욕의 이빨을 드러내며 몰려드는 남자들을 향해, 요코는 냉소를 흘리며 거미줄을 쳤다. 다가온 인간은 하나도 남김없이 그 아름다운 거미줄로 옭아맸다. 요코의 마음은 부지불식간에 잔인해져갔다. 그저 마력을 가진 무당거미처럼 살고 싶다는 욕구에서 날마다 그 아름다운 거미줄을 확장시켜갔다. (p.164)

하지만 그 무수한 남자들 중 요코를 제대로 이해해주는 이는 한 명도 없다. 게다가 자기 자신으로 사는 일이 곧 만인에 대한 개인의 투쟁이나 다름없는 요코에겐 필연적으로 외로움과 공허감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을 터. 요코가 그토록 기대하던 미국행을 포기한 것은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열망이 구라치에 의해 현실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뭇가지보다도 더 고독하다. (…) 낙엽보다도 더 쓸쓸하구나. 이런 생활 말고 달리 해볼 수 있는 생활은 없을까. 도대체 내 생활을 가만히 지켜봐줄 사람은 어디에 있는 걸까?’ (p.165)

구라치는 요코와 “마찬가지로 잘못된 환경에 태어난 사람”으로, “제대로 된 세상이라면 소형 기선의 사무장 노릇이나 할 남자는”(p.166) 아닌, 요코의 거울 같은 인물이다. 특히 구라치에게서 여과 없이 뿜어져 나오는 야수성은 요코의 동물적인 본능을 완전히 무장해제시킴으로써 요코로 하여금 ‘단지 한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원초적인 쾌락을 맛보게 한다. 결국 요코는 (또 하나의 자신이기도 한) 구라치와의 정신적 육체적 합일을 통해 자신의 본래면목과 온전히 통합되는 경험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오로지 외부세계와의 투쟁과 허무한 사랑 놀음으로밖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길이 없었던 요코에게 그것은 결코 잃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천하의 요코가 구라치에게 집착하게 된 건 바로 그 때문.

그냥 이대로 영원히 있고 싶다. 그냥 이대로 잠든 것처럼 죽음의 심연으로 빠지고 싶다. 드디어 구라치의 마음과 완전히 하나가 된 제 마음을 보았을 때, 요코의 영혼은 살기보다 죽기를 바랐다. 요코는 이 서글픈 소망 속으로 기꺼이 빠져들어갔다. (p.323)

절망한 신여성
요코는 약간의 거리감도 견디지 못한 채, 그리고 그 거리감을 끊임없이 의심으로 메우면서 구라치를 속박하려 한다. 완전한 소유를 통해 통합의 경험을 지속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 강렬한 욕구는 요코를 다시금 불안 속으로 밀어넣는다. 예전에 품고 있었던, 어디에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불만으로 비롯된 히스테리도 되살아난다. 급기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구라치까지도)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적으로만 보이는 요코는 분노의 갈퀴로 그들의 마음을 마구 할퀸다. 그러한 광기는 때때로 정신착란 상태에서 자살의 유혹으로 변환되기도 한다. 아예 주변 모든 것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할 정도다. 이제 요코에게 남은 건 죽음의 예감과 병 걸린 몸의 고통뿐이다.

육체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물건만 눈에 띄면, 요코는 겁이 나면서도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 어느 때는 그런 것들을 더할 수 없이 무섭게, 어느 때는 또 더할 수 없이 정겹게 바라보았다. (p.525)
(…) 실내는 어쨌든 정돈도 되어 있고 불도 켜져 있어서 조금도 이상한 데가 없었는데, 거기엔 어딘가 죽음이 스멀스멀 기어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p.541)

전편
후편

옮긴이의 글
아리시마 다케오 연보